크고 작음에 따라 정해지는 등급에 의해 공복제도가 정해지고 공복의 복색군에 따라 품을 나누어 전시를 지급한 점을 볼 때 공복제정이 통치자와 신하간의 종속적 관계를 강조하는 역할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공복제도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공복제도가 정해지고 공복의 복색군에 따라 품을 나누어 전시를 지급한 점을 볼 때 공복 제정이 통치자와 신하간의 종속적 관계를 강조하는 역할로 기능하였다.
한 사회의 일면으로서 복식은 인간이 생활했던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생활양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복식을
고려전기의 복식(918-1392)
-1기: 우리복식의 바탕에 당.송제의 영향인 통일신라 시대에 맥을 이어 발전.
-2기: 원에 복속되어 복식에 영향을 받음..
-3기: 원의 쇠망에 따라 명의 복제를 받아들임.
-고려 전기(광종11년)에 정해진 사색공복제도는 後周의 영향
-紫衫/丹杉/緋衫/綠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 초, 어수선함 속에 모든 제도를 자체적으로 확립하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고려 초기 복식 문화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신라의 관복 양식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 광종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관의 공복을 정하게 된다. 신라식이 아닌 고
공복을 정하여 등위를 가림
(2) 고려 후기 (몽고 복식 영향기)
제23대 고종대에 일어난 몽고의 침입과 29년간의 항전 끝에 항복한 이후로 왕실 이하 귀족ㆍ양반 계급에서는 몽고풍을 쫓는 풍조가 나타남
① 개체변발
㉠ 머리 가장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것
㉡ 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