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이천여인출항
곧장 건륭제 41년 2월에 성안에 양식이 다 떨어져 삭락목은 비로소 사라분과 가족 2천여명을 이끌고 항복하러 나왔다.
阿桂立飭人獻?京師, 乾隆帝御午門受?, 因索諾木, 莎羅奔等罪大惡極, 著凌遲處死。
아계입칙인헌부경사 건륭제어오문수부 인삭락목 사라분등죄대악극 저릉지처사
却說司禮監王振, 因太皇太后旣崩, 遂得肆行無忌。
각설사례감왕진 인태황태후기붕 수득사행무기
각설하고 사례감 왕진은 태황태후가 이미 붕어해 곧 마음대로 해서 거리낌이 없었다.
先是太祖置鐵牌於宮門, 高約三尺, 上鑄“內官不得干預朝政”八字, 振竟將鐵牌?去。
선시태조치철패어궁문 고약
却說王延政被虜至金臨, 入見唐主。
각설왕연정피로지금림 입견당주
각설하고 왕연정이 포로로 잡혀 금림에 이르러서 들어가 당나라 군주를 알현했다.
唐主降?赦罪, 授爲羽林大將軍, 所有建州諸臣, 一槪赦免。
당주강칙사죄 수위우림대장군 소유건주제신 일개사면
당나라 군주는 칙령을 내려 죄
却說武三思旣殺五王, 權傾中外, 當時爲三思羽翼, 約有數人, 最著名的叫做五狗:
각설무삼사기살오왕 권경중외 당시위삼사우익 약유수인 최저명적규주오구
각설하고 무삼사는 이미 5왕을 죽이고 안팎으로 권력이 안팎으로 기울여 당시 무삼사의 날개는 대략 몇명이 있어 가장 저명한 사람은 5구[5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