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 바로 말다래에 그려져 있던 천마도인데 신라의 그림 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말다래는 부장품을 넣어둔 궤짝에서 1쌍이 발견되었는데 하늘을 나는 천마의 그림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말 옆구리에 진흙 같은 것이 튀지 않도록
세도 내해 연안에서 키나이 지방에 걸쳐 축조가 되었다. 이는 서부 일본의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성장해 간 사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실은 서일본지역에 야마토 정권이 출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거대한 통일왕권의 성립으로 보기는 어렵다. 단지 부장품에
따라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최고의 진품으로 여겨 오던 고려자기 등 고분 부장품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던 일본인들은 1905년을 전후하여 개성, 해주, 강화도 등지의 고려시대 고분을 도굴하여 유물들을 일본으로 무더기로 밀반출하였다
유물에서 다른 지방을 압도하는 신라 최고 지배층의 배타적인 묘제로 볼 수 있다.
3. 다음의 고구려 고분 중 사신도 벽화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3점)
정답 : 안악 3호분 벽화, 덕흥리 고분 벽화, 수산리 고분 벽화, 각저총 벽화(p46~p51)
고구려 벽화고분은 그림 내용에 따라 생활
모형이긴 했지만 왕의 무덤에 들어가 보니 거대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왕의 권력이 피부에 닿아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참 묘했다. 무령왕릉 축조과정과 방법이 모형화 되어 있었는데 무령왕릉은 벽돌 제작 벽돌 굽기 부장품 제작 무덤 터 닦기 무덤축조의 과정으로 이루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