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총]천마총 발굴의 의의와 발굴조사자로서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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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천마총]천마총 발굴의 의의와 발굴조사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천마총의 발굴 과정
2.천마총의 형태
3.출토유물(신라금관과 여러 부장품)
4.발굴조사자로서의 자세
본문내용
천마총의 발굴은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1973년 여름, 전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민심마저 흉흉했다. 경주에서는 멀쩡한 신라왕릉(천마총)을 발굴해서 하늘이 노해 비를 내리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했는데 그것은 한 번에 불식시키는 역사적인 발견이 있었다. 73년 7월 26일 오후, 1500여 년 간의 긴 잠을 깨고 순금제 신라 금관이 그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가뭄의 뙤약볕이 이글거리며 내리쬐고 있던 서쪽 하늘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이 암흑천지로 변하면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유언비어도 사라지고 아울러 가뭄도 해소되어 아무 문제없이 발굴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천마총은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연습 삼아 발굴해보자 해서 삽질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내부는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큼 놀라웠다.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물창고(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 점)가 150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금관 이외의 유물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 바로 말다래에 그려져 있던 천마도인데 신라의 그림 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말다래는 부장품을 넣어둔 궤짝에서 1쌍이 발견되었는데 하늘을 나는 천마의 그림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말 옆구리에 진흙 같은 것이 튀지 않도록 달아매는 다래에 그려져 있었고, 너비 75cm, 세로 53cm의 크기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겹쳐 실로 누비고 둘레에 가죽을 댔다. 안쪽 주공간에 백마를 그렸는데, 네 다리 사이에서 나온 고사리 모양 같은 날개, 길게 내민 혀, 바람에 나부끼는 갈기와 위로 솟은 꼬리 등이 하늘을 나는 천마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천마는 사실적인 그림이 아닌데다 백색 일색이기 때문에 말의 몸에 힘이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실루엣으로서는 잘 묘사되었다. 둘레의 인동 당초문대도 각부가 정확한 비율로 구성되었으며 고구려 사신총에서 보는 완숙한 당초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고 싶은 말
천마총의 발굴 과정과 형태, 출토유물(금관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신라금관의 비밀)에 대해서 정리하고 발굴조사자가 가져야할 마음자세에 대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