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탕평론 및 세도정치의 전개라는 특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18세기 탕평론이 제시된 데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었고, 영조대에 전개된 수론탕평론의 입장과 정조대에 시행되었던 준론탕평론(의리의 변발을 보다 중요시하지만, 붕당의 타파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긍정하는 견해이다.)은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잠재적으로 성장하여 16세기 중엽에는 마침내 집권에 성공한다.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들은 훈척 세력을 정계에서 배제하는 한편, 국왕까지도 제어하며 정치를 주도하고자 했다. 그들은 집권의 당위성을 붕당정치론에서 찾고자 하였다. 사림들은 붕당의 개념과 당위성
서원의 독자적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퇴계는 이같이 향교에 의한 관학 아카데미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후 도산서원을 비롯한 많은 서원설립을 주도하였다.
한편 서원은 사림계가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된 이후 전개된 붕당정치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붕당정치는 향촌
서원의 독자적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퇴계는 이같이 향교에 의한 관학 아카데미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후 많은 서원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한편 서원은 사림계가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된 이후 전개된 朋黨政治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붕당정치는 향촌사회의 서원을
서원 체제를 정식화하고, 원규를 지어 서원에서의 학습활동과 운영방안을 규정하였다.
서원의 건립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사림의 향촌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졌으며, 적극적인 서원 보급운동에 의한 결과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요인은 붕당정치의 전개에 있었다. 사림의 집권과 함께 비롯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