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주도하고자 했다. 그들은 집권의 당위성을 붕당정치론에서 찾고자 하였다. 사림들은 붕당의 개념과 당위성 천착에 노력하는 한편,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통해 붕당정치의 토대를 구축함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붕당이 전제 군주 하에 있던 조선에서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을까? 전제 왕조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기하고, 경종 때에 왕위계승 문제를 쟁점으로 격렬한 정쟁을 겪은 뒤 노론의 우위로 귀결되었다.
18세기 중 ·후반의 영조와 정조 때에는 국왕의 절대성을 추구한 탕평책(蕩平策)으로 말미암아 정치세력이 국왕의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재편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조선 제 9대 왕 선종은 세조 때 없어진 집현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홍문관을 설치하여 언론기능을 강화하고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며 후세양성에 힘을 쓴 사림세력을 등용하여 신권을 훈구파와 사림 두 세력으로 나눠 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에 훈구파가 사림을
사림파는 훈구파라는 강력한 상대세력이 있을 때는 단결되었다. 그러나 선조조에 훈구세력이 무너지고 사림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자 사림이 자체 분열하여 붕당이 생기고 붕당간에 당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므로 당쟁은 사림정치의 부산물로 보아야 한다. 당쟁이 유독 조선후기에만 있었던 것도 그러한
조선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은, 지리적인 조건․인종적인 골상․문화 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소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외관상 특수성이 다른 문화민족의
역사적인 발전 법칙과 구별되어야 할 독자적인 것은 아니며, 세계사적인 일원적 역사
법칙에 의해 다른 제 민족과 거의 궤적인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