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유럽 연합의 필요성을 연설한 바 있으며, 1948년부터 유럽 통합의 본격적인 구상이 시작되었다.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오랜 논의 끝에 비로소 1993년 EU는 출범하였고 이를 통해 유럽은 완전한 경제통합을 이루었다. 영국 또한 EU의 일원으로 함께
경제의 후퇴를 그리고 외적으로 엄청난 양의 국제수지적자를 가져와 결국 달러화의 국제적 신용도를 하락시키게 된다. 1970년대 미국은 달러화의 유출로 만성적 국제수지적자로 들어섰고, 닉슨대통령은 금에 대한 달러의 교환을 중지시킨다는 것을 골자로 신경제정책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닉슨의
FTA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백악관 통상라인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현실을 제대로 깨닫기 시작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리 통상당국도 한미 FTA의 성과를 분명한 논리로 설득하고 대응함으로써 양국이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EFTA는 상호 보완적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FTA를 통하여 상호간에 교역량 및 교역액이 전과 비교하여 크게 증가하는 등 상호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무역이 GDP의 70%를 차지하기 때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시장개척단 파견 등 시장진출노력을 강화하였다. 중국과는 산업협력위원회 개최, 산업기술정보 네트워크의 구축, 서부 대 개발 사업의 참여 등의 산업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등에 따른 특수를 겨냥하여 전략적인 마케팅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