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는 전퇴 있는 3칸집으로서 지붕은 박공이며, 광채는 일자형 전면 5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다.
(3) 홍기창 가옥[洪起昌家屋]
안채는 비교적 규모가 커서 필요한 생활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각 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외부와의 연결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원래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갖
한옥은 상류주택과 민가에 따라서도 구조를 달리한다.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상류 계층의 주택은 신분과 남녀, 장유(長幼)를 구별한 공간 배치구조를 하였다. 즉, 집채를 달리하거나 작은 담장을 세워 주거 공간을 상ㆍ중ㆍ하로 구획했다. 상(上)의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가옥에서 현대가옥으로 변화하게 된 요인은 개항(開港)을 통하여 외국문물이 상륙하여 차차 주택양식 자체에도 큰 변하를 겪게 되었다. 개량운동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부엌 개조,찬방의 기능부여, 행랑의 이동 및 집의 다층화 등의 가능성 있는 대안들이 나오게 되었다. 도시의 인구집중으로 주택난이
채안쪽에 사랑채를 둔 가옥의 전체는 'ㅁ'자형이다. 대문은 동향이며, 사랑채는 동남 모서리의 전체 시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누각식이다. 몸채와 사랑채의 지붕은 단 차이를 두었으며, 사랑채 대청은 밖에서 볼 때는 중층이다. 이는 지형을 살린 구성이다. 통 2칸 전면 3칸의 6칸인 안채의 대청은 동쪽
한옥에서 찾은 유학의 ‘分’
한옥마을에서 우리는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과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처음 한옥을 바라보았을 때는 기와가 있고 대청이 있는 그냥 집으로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세심히 관찰하고 여러 설명을 들으면서 구조 하나하나 마다 조선시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