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니움의 영향을 받게 된다. 지금도 볼 수 있는 폼페이의 중심부는 이때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삼각형 공회장과 포룸, 아폴로 신전 내부의 공공 건물들이 삼니움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그 후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서 시작한 로마가 그 세력을 팽창해 가면서 남부 이탈리아로 진출해 내려오면서 삼니
삼니움족이 캄파니아를 정복하고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를 차지했다. 당시의 화폐는 1세기 후에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가 속했던 동맹을 누케리아 시가 주도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폼페이가 역사기록상에 처음 언급된 것은 BC 310년 제2차 삼니움 전쟁 때 로마의 함대가 사르누스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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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 외의 이탈리아의 원주민은 삼니움 부족과 사비니 부족 등 여러 부족이 난립하고 있었는데, 먼저 삼니움 부족은 4개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군사적으로는 함께 행동했으며 초기의 로마와 세 차례에 걸쳐 큰 전쟁을 치뤘다. 사비니 인은 수차의 전쟁 후 로마의 우방이 된다.
삼니움 족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 걸쳐 살던 고대 이탈리아인의 한 파인 오스크어계(語系)에 속하는 민족. (출처 ; 위키백과)
이라든가 나폴리를 선두로 하는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은 모두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소키’로서 연합에 가맹하게 된다. 그러나 군대의 발밑에 엎드린 소키에 대해 로마
삼니움 전쟁 발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중부 이탈리아를 장악
카르타고를 상대로 한
제 1차 포에니 전쟁 발발,
시칠리아가 로마의 영토가 됨
제2차 포에니 전쟁 발발,
로마는 한니발의 침략을 물리치고
스페인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함
제3차 포에니 전쟁 발발,
로마는 카르타고를 격파하고
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