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를 서두르며 헤이룽 장성에 있는 발해의 옛 도읍지 상경성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상경성 입구에는 당나라 때 발해 유적이란 안내판이 세워졌는데 이처럼 정밀한 고증 과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뤄지는 복원은 중국의 역사왜곡 저의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상경성 발굴을 시작으로 판련성(동경), 서고성(중경)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발굴은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 시기는 일제 강점기 시기 일본이 동아시아 침탈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던 시기이며 당시 발굴된 유물들 상당수가 일본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중국에서 발해 관련 유적, 유
발해는 영역 확장과 그밖에 여러 대내외적인 요인에 의해 4차례에 걸쳐 천도를 했다고 한다. 발해 도성은 건국과 천도 과정에서 조성되었고, 구국, 중경, 상경, 그리고 동경에 있었다. 그 지역은 무왕 대에 확대된 영역 안에 있었다. 무왕 재위 당시(726)에 당이 흑수말갈 지역에 흑수부를 설치하자 무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