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으로 분리되게 된다. 당시 이조전랑직은 5품직으로서 고위직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문무 관원의 인사 행정을 맡아보는 실무직이었다. 이조전랑은 관리 임용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삼사(언론기관)의 언론을 주도하는 등 사림 정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파에
있다는 능창군 전(佺)을 교동에 안치한 후 살해했으며 대북정권에 호위된 광해군은 이어 대비폐출계획에까지 말려들어 광해군 10년(1618) 정월에 대비의 존호를 깎아 서궁이라 칭하게 한 대비유폐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3. 서인이 내세운 인조반정의 명목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이 광해군
Ⅱ. 사림의 계보
1. 이이-김장생-송시열
이이 - 김장생 - 송시열’을 연결한 것은, 이이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호서지역의 서인들은 김장생 - 송시열로 이어지면서 이이 중심의 성리학 이해와 절의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학파는 그와 동시대에 교류한 학
1. 갑술환국 전의 정국
갑술환국에 앞서 일어난 기사환국 이후 남인이 새로이 등용되게 되었다. 남인은 경신환국의 장본인이었던 보사공신, 임술년 고변의 주동자, 그리고 서인의 종주였던 송시열 및 그들과 관련된 100여명 이상을 처벌했다. 이처럼 정부 요직을 점하고 있었던 남인의 보복이 워낙 철
조선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주 키워드는 정치사 이다. 정치사 안에 경제, 문화, 전쟁, 사상등 주요 쟁점들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조선의 당쟁, 붕당정치는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다루어져 일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이것은 조선의 멸망과도 결부되는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