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이렇듯 김만중은 정국운영의 구도를 붕당 상호간의 역학관계에 두고, 이를 건전하게 이끌어가기 위하여 성리학적 체계에서 정치적 이념을 모색, 도덕적 정통성을 희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붕당정치의 변질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6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서인 노론계열 중신으로, 한글 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그의 대표작이다. 김장생의 증손이고, 신독재 김집은 그의 종조부였다. 또한 김춘택의 종조부가 된다. 이 장에서는 김만중의 구운몽독후감과 감상문에 대해 작성하기로 하자.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자가 중숙(重叔)이요, 호가 서포(西浦)다. 그의 호 서포는 그가 평안북도 선천(宣川)에 귀양 갔을 때 그곳의 지명을 따서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의 집안은 광산(光山)은 김씨 명문거족이었으니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그의 증조할아버지다. 김장생은 율곡(栗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