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에게서 영창대군이 탄생하자, 서자이며 둘째아들이라는 이유로 영창대군을 후사(後嗣)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소북과 그를 지지하는 대북 사이에 붕쟁이 확대되었다. 1608년 선조가 병이 위독하자 그에게 선위하는 교서를 내렸으나 소북파의 유영경이 이를 감추었다가 대북파
영창대군을 출산한다. 이에 대신들은 암
암리에 영창대군의 지지파와 광해군의 지지파로 분리 된다. 하지만 선조의 병이 악
화되자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해 광해군에게 선위 교서를 내리지만, 영의정 유영경
은 이를 감춰버린다. 나중에 발각되지만, 그 때는 이미 선조가 운명을 달리 한 후였
다. 이
1. 임진왜란, 그 혼란기의 광해군과 인목대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당시 조선의 왕은 14대 임금인 선조였다. 선조의 즉위는 16세기 초반 이래 지속되어온 훈구와 외척들의 척신 정치가 끝나고, 척신정치 시절 박해를 받았던 사림파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하면서 바야흐로 정치판이 물갈이를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세자책봉
광해군은 출생 순으로 보면 선조의 둘째 아들이다. 게다가 후궁에게서 출생한 서자였다.
서자 그것도 둘째아들에 지나지 않던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 된 것은 임란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었다.
임란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선조는 왕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