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해군의 집권과정 및 상황
1-1. 광해군의 출생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혼이고 후궁
공빈 김 씨가 어머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군
과는 다르게 왕자들 중에서도 특히 품행이 바르고 효
성이 지극했으며, 학문이 독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선조가
인조반정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었지만 성리학에 의한 이념을 중시하던 당시의 조선사회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북인이 광해군에 의해 중용되면서 소외되었던 서인세력은 광해군의 폐모살제(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죽임)와 중립외교(임진왜란 때 원군을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다는 내용이다. 《계축일기》의 작자로는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대비의 측근 나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체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인목대비 자신이 쓴 것이라는 설도 있으며, 영창대군의 누이인 정명 공주가 창작에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본고는 《계축일기》의 내용
인조반정과 이어진 이괄의 난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네 가지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다.
1. 동북아 정세의 변화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동북아 정세는 크게 변화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후금의 등장이다. 건주여진의 추장이던 누르하치는 임진왜란으로 명나라가 신경이 조선에 쏠려 있는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