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다. 그러나 공민왕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문세족의 갖은 술수에 결국 신돈은 반역 혐의를 쓰고 처형되고, 이로써 공민왕의 개혁 또한 좌절되었다. 권문세족은 공민왕을 시해한 뒤 10살 밖에 되지 않은 꼭두각시 우왕을 세웠고, 그러자 그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조선은 결코 자주적인 외교노선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펴보지 못하게 된다. 또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의 왕이 되기까지 베일에 감추어진 암살과 암투를 통해 너무 많은 피를 보게되었다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이는 우왕과 창왕의 신씨조작설, 선죽교에서의 정몽주 암살사건 등이 잘 뒷받침 해준다.
조선의 정치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조선의 새 왕조가 고려 왕조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갈 수 있었던 중요한 시점이 왕자의 난으로 무참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⑮ 개혁가이자 실천가로 이름을 남기다.
정도전은 여말선초에 이성계를 권력의 정상으로 올려놓기까지 이를 제
공민왕의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면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이때 학문적으로도 크게 인정받았다. 이색은 정몽주를 ‘우리 나라 이학의 조종’ 이라고 까지 호평하였는데 이는 후에 조선 사림파들이 정몽주를 문묘에 종사할 것을 주장할 때도 주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다.
개혁하는 한편 정치에 정진 진(陳)왕조를 멸망시켜 근 4백 년 동안 이어오던 대분열의 시대에 종지부.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강력한 중앙 집권제의 확립과, 지방 행정의 간소화를 실시 군사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여 병농일치제를 실시하였다. 요역의 경감과 세금을 감소시킴으로써 국가가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