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새로운 왕조의 왕이 되기까지 베일에 감추어진 암살과 암투를 통해 너무 많은 피를 보게되었다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이는 우왕과 창왕의 신씨조작설, 선죽교에서의 정몽주 암살사건 등이 잘 뒷받침 해준다. 앞에서 서술한 사실들을 통해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역성혁명의 평화적 왕조교체라는 것이다. 즉 조선왕조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복수단이 아닌 개혁을 수단으로 하여 세워진 왕조라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 왕권의 강화
태조 이성계는 건국 후의 혼란 수습과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취하기 위한 강력한 왕권이 요구되었다. 이에 태조
조선 왕조의 창업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하는 신흥무인세력과 역성혁명을 꿈꾸던 급진적인 신진사대부들이 결합한 결과였다. 급진적 성향의 신진사대부들은 관학파(官學派) 또는 훈구파(勳舊派)로 불리며 새로운 왕조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반면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왕조의 건국
추구하며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것을 주장한 급진 혁명파 세력들이 고려왕조의 기본 틀 내에서의 온건적인 개량을 주장한 이색, 정몽주 등의 온건파 세력들을 제거하며 신흥 무인 세력의 대표자였던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며 결국 조선이란 새로운 왕조가 성립되게 이르렀다.
위화도회군 이후 사회 개혁 방법론에 따라 조선을 건국하고자 하는 혁명파와 고려를 유지하려고 했던 온건개량파로 분열되었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먼저 고려 말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다루고, 혁명파의 핵심 인물인 삼봉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조선건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역성혁명론’과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