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형성사를 재검토해 볼 수 있는 자료상의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되었던 점, 기존에 不信論이 통설화되어 있었던 삼국사기의 신빙성 문제에 대한 관심, 인류학의 도입, 축적된 연구성과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고대 국가발전 단계에 대한 논의는 크게 부족국가설, 성읍국가설, chief
국가 논쟁은 괄목할 만한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하겠다.
기존의 통설이었던 부족국가론을 대신하여 성읍국가론, 취프덤(Chiefdom)론 등 대안들이 모색되었다. 아직 논쟁이 완전히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므로 공과(功過)를 충분히 따지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이 방면의 이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머리말
70년대 초 이후 한국고대사 분야에서 가장 큰 쟁점의 하나로 부각되어 관심을 끌어 왔던 것은 초기국가의 형성과정을 둘러싼 문제였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에서 초기국가는 씨족(氏族)→부족(部族)→부족국가(部族國家)→부족연맹(部族聯盟) 이란 일련의 계기적인 발전 과정을
성읍국가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읍국가의 지배자들은 청동 무기를 사용하여 다른 성읍국가를 정복하려 했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가 만들어졌다.
북쪽 송화강 유역의 부여, 압록강 중류지역의 예맥, 요하와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 동해안 함흥평야의 암둔, 황해도 지방의 진번, 그리고 한강 이남의 진
고대 부족국가시대의 행정제도
우리나라의 역사는 50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부터 시작하여 B.C. 4천 년경부터 등장한 신석기문화를 거쳐 B.C. 10세기경 청동기문화가 전래되면서 새로운 사회로 성장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문화 단계의 씨족사회를 통합하면서 성읍국가나 연맹국가가 나타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