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패배한 다음 해인 1946년 프랑스는 다시 베트남을 자기 식민지로 삼았다고 한다. 베트남에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이끈 호찌민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는 사회주의자로 베트남 국민들의 정말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근데 이때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양 강대국들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할까? 가장 중요한 우방국이었던 미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전쟁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제 베트남전쟁 파병은 최초이자 최대의 해외 파병이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인
베트남전쟁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베트남전쟁(1954년~1975년)은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맹렬한 전쟁이라 여겨진다. 베트남 사람에 의해 불린 ‘반미(反美)전쟁’이나 ‘반미구국 항전’이라는 명칭처럼 미국과 베트남 간에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인들의 단순하고도 강한 성격이 베트남전쟁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패배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도 베트남전쟁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한국전쟁보다 더 멀리 있다. 간혹 보이는 고엽제 피해 전우단의 차량과 ‘하얀전쟁’ 등의 문학작
미국은 1965년 남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였고, 여기에 한국도 참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베트남전쟁의 시작이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여에 걸쳐 연인원 약 33만 명의 군인을 파병한 우리나라에 막대한 전사자와 부상자 뿐 아니라 후유증을 남긴 이 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