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체제는 그것이 국제문제의 해결을 열강간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이룩한다는 국제사회조직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의의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력균형의 긍정적인 기능을 재평가하기 위해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Ⅱ. 세력균형의 분석
1
세력균형 원칙을 깼다는 명목 하에 대 프랑스 전쟁을 선포하였다. 초반 2년간은 영국과 프랑스의 일대일 전쟁이었으나, 프랑스가 스페인을 끌어들이자 영국은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과 대프랑스 동맹을 맺어 나폴레옹에 대항하였다. 나폴레옹은 뛰어난 전술로 승리를 이어갔지만 도리어 이것이
세력 -특히 독일 연방-과 연계하여 반혁명 전쟁을 수행하여 나갔다. 혁명군의 유능한 장교 나폴레옹은 대불동맹의 연합국 군대를 격파시키는 연승 가도에 올랐다.(오스트리아. 프러시아, 피에몽, 폴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당시 혁명군의 중심은 총동원령과 군 통합방침에 따라 애국심이 크게 고양된 청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다.
1815년 나폴레옹 몰락이후 유럽 대륙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5대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국가 간 긴장은 각종 국제회의에서 해결되었고 이러한 체제는 소위 ‘유럽협조체제’를 낳았다. 그 결과 ‘빈체제’ 빈체제(Vien
빈체제에 항거 하면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곧 자유주와 민족주의의 연관성. 본래 빈체제는 세력균형과 현상유지의 정통성에 입각한 것으로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복고정치의 개혁과 민족의 독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