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정권은 부르주아와 지주 등 우익 백군(白軍), 즉 반(反)혁명세력의 봉기와 연합국(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레닌은 모든 기업의 국유화, 노동의무제, 곡물징발제, 식량배급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전시(戰時) 공산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소비에트 적
그루지아 정부를 징벌하고자 했던 러시아가 압하즈와 북오세티아를 인적 물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루지아의 세바르드나제는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국가목표로 두는 친서방정책을 펴 왔다. 그러던 정권이 2003년 11월에 발생한 ‘장미’ 혁명으로 종말을 고했다.
2. 장미혁명
소비에트연방, 러시아)의 역사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절대주의적인 봉건적인 구조를 가졌던 러시아는 유럽의 산업화된 국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 특히 유럽의 열강들이 충돌했던 1850년대의 크리미아전쟁에서 러시아의 대패는 그것의 사회적 후진성이 여실히 드러
러시아의 역사적 전통과는 달리 흐루시초프는 조용히 물러날 수 있었다. 흐루시초프에 이어 브레즈네프는 1970년대 내내 소연방 공산당(CPSU) 서기장으로서 소비에트를 지배했다. 그의 집권기간은 국내적 안정과 공세적 대외정책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시기로 특징지어졌다. 브레즈네프 집권기간 동안 러
역사를 가진 중국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신만의 공산주의를 탄생시켰고(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러한 독자적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은 마치 과거 청대 이전의 여러 왕조가 그러했듯이 타국의 문화를 침해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