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는 1840년대 파리로 되돌아간 뒤에 적극 출판하려고 했다. 코시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했던 강의로 유명해진 반면 가우스는 가르치는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둘 다 위대한 선배들, 특히 오일러와 라그랑주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둘 다 이처럼 이전 수학사의 연구에 근거했다는 사
Ⅰ. 수학자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그의 추종자들이 신비의 안개로 감싸 버렸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기원전 572년경 에게 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것 같다. 탈레스보다 50세쯤 아래이고 탈레스의 고향 밀레투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으므로 늙은 탈레스 밑에
◎ 가우스
독일의 수학자. 대수학·해석학·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으로부터 독립된 순수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한편 물리학, 특히
업적을 인정받고, 크로네커와도 화해를 했다. 하지만, 이때에는 이미 칸토어의 정신병은 심각한 지경에 있었다. 그는 할레라는 도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1918년 1월6일 쓸쓸히 눈을 감았다. 수학사에 빛나는 큰 업적을 남기고도 생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마치고간 칸토어. 칸토어가 남기고 간 업적을
업적(기원 전 240년경)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에 대하여는 왕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인용된다. 금세공인이 왕관을 만들면서 금의 일부를 은으로 대체하였을 것이라는 왕의 의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몰두하던 아르키메데스가 공중목욕탕에 있을 때 “액체에 잠긴 물체는 그 물체에 의하여 밀려난 액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