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문으로 간행된 뒤에 《대한황성신문》,《제국신문》등이 국문으로 발간되어 국어국문운동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었다. 《독립신문》에서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국문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과 조선의 글로서의 국문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강조하여 국문 사용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순국문으로 표기됨 음악적 의도에서 종장 넷째 음보를 생략하였음
하여가와 단심가는 인조 때 만들어진 해동악부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 말에 국운이 기울어지자 정몽주와 전운양 등은 몸을 바쳐 보전하려고 하였으나 이성규의 세력이 날로 강해지므로 마침내 정몽주는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한자를 비롯한 다른 문자와 혼용하여 쓴 자료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언간이나 고소설, 언해본의 일부같이 순국문으로 표기된 자료는 극히 일부이다. 어떤 문헌은 대부분이 한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면서도 간혹 한글로 표기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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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혈>
영웅이 흘린 피가 점점히 썩지 않고,
황금산의 비가 되며, 백두산의 구름 되어,
원한을 쾌히 씻을 때까지 오락가락.
(1910년 3월 29일자)
⇒ <한반도>는 직설법을 피하지 않았으며 형식을 갖추는 데서 표준이 될 만하다. <영웅혈>은 순국문으로 표기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순국문으로 표기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소생단>(蘇生丹)
내 가슴 쓸어 만져보소 살 한 점이 없네 그려.
굶든 아니 하여도 자연 그러하여,
아마도 우리 국권 회복하면 이 몸 소생.
(1909년 1월 26일자)
⇒ 고시조를 개작하여 마지막 줄만 고쳐 놓았으나 그다지 어색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