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를 비난한 데 있지 않은가 하는 견해가 있었고 이는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상당한 정도까지 순자는 자신의 사색에 특유한 제약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에 궁극적인 손상을 자초했던 것이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것은 아니다. 순자는 단연 전세계가 낳은 가장 재기(
않았다. 진시황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그에게 석방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그가 자살한 후였다. 이처럼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태어나 조국의 멸망을 바로 눈앞에 두고 죽어간 사상가로서, 중앙집권적 봉건 전제정치체제의 확립을 위해 ‘형명’과 ‘법술’이론을 집대성한 자이다.
사상가들의 논쟁들이 나오고 그것을 주제별로 학자들이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교수님께서 첫 시간에 설명해 주셨던 천의 개념이 포함되는 천인(天人)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과(고자, 맹자, 순자의 논쟁) 위진 철학에서 무(無)와 유(有)의 논쟁을 살펴보고자
의해서 기인되었다. 공자 때만 해도 귀신에 대하여 단지 공경하되 멀리한다 라는 태도를 취하였을 뿐, 결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맹자도 또한 위신의 관념에 대해서 그다지 큰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순자의 경우 공자의 종교에 대한 막연한 태도를 더욱 발전시켜 귀신의 존재를 명확하
사람에게는 인간의 삶의 표본이요 성인(聖人)그 자체였다. 그의 제자가 무려 3천여명에 달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을 돌아볼 때, 그의 인품과 학문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공자의 가장 기본적이 사상은 인(仁)사상이다. 공자의 사상은 인 하나에 귀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