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이탈리아의 파시즘
1)이탈리아의 그 당시 상황
이탈리아는 경제기반이 약한데다가 전쟁 중에 막대한 외채를 짊어지게 되어 전후에는 인플레에 시달리고, 실업자가 증가하여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유하는 등 사회 불안이 격화되었다. 한편 협상측에 가담하여 전승국이 된 이탈리아는 런던 비밀조
없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탈린의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1930년 초반부터 급속하게 경제가 현대화되면서 <표 4>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다음으로 경제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1941년 이후부터는 2차 대전으로 인한 계속된 피해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히틀러 총통
1930년 가을 이후 히틀러의 대중적 인기와 연설력에 힘입어 나치당의 당세는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1932년 1월 27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히틀러와 대자본가들의 회담은 나치와 독일 지배세력의 결합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히틀러는 1932년 3월 13일의 대통령선거에서 31.1%, 4월 11일의
히틀러의 심복인 루돌프 헤스(Rudolf Hoess)가 수용소장으로 일했다. 최초에는 폴란드 정치범들을 점진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42년 유태 인종을 유럽에서 완전히 말살하려는 이른바 "유태인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책(Final Solution of the Jewish Question)"이 수립되면서부터 유럽 전역의 유태
위주의 냉전의 개념정의를 거절하고 필자는 냉전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냉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체제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체제를 대표하는 미국이라는 양극을 중심으로 양 진영간에 이념적 적대와 군사적 봉쇄를 근간으로 형성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등 전 영역의 전면적 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