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 전간기(戰間期) 영국의 대독일 유화정책의 국제체제분석-베르사유조약부터 뮌헨회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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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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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 유화정책의 정의와 기존의 이론
: 유화정책의 국제체제분석의 의의


본론 : 유화정책의 국제체제분석

Ⅰ. 영국의 유화정책
: 베르사유조약부터 뮌헨회담까지

Ⅱ. 전간기 유럽 내 힘의 분배상태 : 다극체제
1) 영국의 유화정책
2) 전간기 유럽 내 힘의 분배상태 : 다극체제
(1) 1차대전 이후 각 국가의 상황 : 군사력
(2) 1차대전 이후 각 국가의 상황 : 경제력
Ⅲ. 전간기 국제체제의 변동 : 세력균형체제
1) 국제연맹의 탄생과 위기 : 집단안보
2) 1차대전 이후 각 국가의 행위 : 동맹
(1) 독일
(2) 프랑스
(3) 소련
(4) 영국
Ⅳ. 유화정책과의 연관성
1) 영국의 국가이익
2) 영국의 프랑스 견제
3) 독일의 팽창
4) 소련의 유럽진출 방지

결론
: 국제체제분석수준에서 유화정책의 도출


▣ 참고문헌
▣ 참고자료


본문내용
2) 경제력

경제력은 한 국가의 국력에서 군사력과 같은 직접적인 실력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 국가의 잠재력으로 볼 수 있다. 로이드 젠슨,『외교정책의 이해』, 평민사, 2006, p. 243.

1차 대전 직후의 독일의 경제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영토 감소로 철광석 자원의 절반과 석탄의 4분의 1 가량을 상실하였고, 21년간 지불해야 할 전쟁 배상금이 있었다. 승전국이 배상금으로 가치가 떨어진 생산물은 제외하고 금, 은과 같은 것을 요구함으로써 은행의 금 보유량은 형편없이 낮아졌고, 배상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독일은 차관을 빌리고 화폐를 마구 발행하였다. 이로 인해 독일은 유례가 없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국민들이 25만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1인당 1일 영양섭취 평균이 1000칼로
유럽국가들이 유럽국제체제에서 차지하는 경제력의 상대적 비중 1816~1940

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다. 영 안(Young Plan)으로 전쟁보상금 지 급이 중단된 이후, 히틀러가 펼친 아우토반 사업 등의 경제정책은 군수산업과 함께 성공을 거두어 1936년에 들어서는 경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이렇게 회복된 경제력은 전부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쓰였다.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으로부터 14억 마르크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군사비용으로 인한 적자를 메우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만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는 철강 생산량과 에너지 소비량을 같은 기준으로 고려해서 측정한 것이다. 독일은 전간기 소련을 제외하고는 유럽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으며 에서 볼 수 있는 잠재력으로는 소련까지도 압도하였다.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에도 인구는 6천 5백만 명으로 프랑스의 4천만 명을 넘는 수치였다. A.J.P. 테일러,『제 2차세계대전의 기원 』, 비밀의 풍경, 2003, p. 60.
이러한 잠재력은 1939년 이후 눈에 띄는 독일 군사력의 우위로 발현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차 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전쟁 직후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였으나 경제력에서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 엄청난 채권국이었으나 종전 시에는 엄청난 전쟁 비용을 치르면서 국고가 바닥이 났고, 소비재 부문 생산력을 모두 군수 물자 생산에 집중했기에 많은 해외시장을 잃은 상태였다. Collier Paul, 『제 2차 세계대전: 탐욕의 끝, 사상 최악의 전쟁』 (Oxford: 플래닛 미디어, 2008), p. 68.
당시 대영제국(영국 본토와 식민지)은 붕괴가 가속되는 상태였고 전쟁 후에는 해체가 촉진되는 상황이었으며, 한 때 영국이 관할하던 세계 경제의 흐름은 ‘세계 3대 자본주의 후발국가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류제승, 『국제정치와 전쟁전략』, 한울 아카데미, 1996, pp. 20-22, pp. 72-73.
1929년 경제공황으로 인해 경제 상황은 더욱 나빠졌으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국방비 지출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존. J. 미어셰이머,『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 2004, p. 168.
에서 볼 수 있는 영국의 경제력은 소련보다도 뒤쳐진다.
프랑스는 전쟁비용과 경제공황 등으로 입은 경제력의 피해에 더하여 전쟁이 일어난 본토로서 공장, 다리, 철로 등 사회 인프라가 파괴되었으며, 서부전선은 탄피, 참호, 화학 물질로 황폐해졌다.
소련은 1922년 등장한 직후 몰락한 러시아처럼 보잘 것 없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탈린의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1930년 초반부터 급속하게 경제가 현대화되면서 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다음으로 경제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1941년 이후부터는 2차 대전으로 인한 계속된 피해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참고문헌

김용구.『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이기택.『국제정치사』. 일신사. 2000.
이춘근.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나남. 2007.
A.J.P. 테일러.『제 2차 세계대전의 기원』. 비밀의 풍경. 2003.
Collier Paul 외.『제2차 세계대전: 탐욕의 끝, 사상 최악의 전쟁』. 플래닛미디어. 2008.
이매뉴얼 윌러스틴.『세계체제 분석』. 당대. 2005.
Henry A. Kissinger.『Diplomacy』. New York. 1994.
제프리 메가기.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플래닛미디어. 2000.
존. J. 미어셰이머.『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 2004.
존 M. 톰슨. 『20세기 러시아 현대사』. 사회평론. 2004.
로이드 젠슨.『외교정책의 이해』. 평민사. 2006.
마틴 키친.『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독일사』. 시공사. 2001.
다닐로프·코술리나. 『러시아 역사』. 신아사. 2009


김양규. “유화정책의 개념과 전략적 운용-국제정치이론, 역사, 그리고 한반도 맥락에서-”.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09.
전재성, “유화 혹은 포용: 히틀러에 대한 유화정책이 대북정책에 주는 시사점”. 「국가전략」제6권 2호. 2000.



▣ 참고자료

유럽 각국 육군 병력 수 1920~1930.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 570.
동원된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군사적 규모 1938~1940 (사단의 숫자).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 593.
유럽 각국 육군 병력 수 1933~1938.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 592.
유럽국가들이 유럽국제체제에서 차지하는 경제력의 상대적 비중 1816~1940.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 160.
독일과 그 주변 지역 1919~1938. 제 2차 세계대전의 기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대한 안보정책으로 프랑스가 다시 전통적인 동맹조약을 구축함. 세계외교사 p. 649.
유럽의 국경 1919~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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