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화 자강 운동
1.외교 사절단 파견
일본 - 수신사, 조사시찰단
청 – 영선사
미국 - 보빙사
2.각국과 조약 체결
- 강화도 조약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미국, 프랑스등과 수호조약
3.관제 및 군제 개혁
- 통리기무아문 설치 : 밑에 12사를 두어서 국내외 군국기무담당
-
서세동점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개항’ 내지는 ‘근대화’라는 것이 외부 상황의 변동에 의한 소극적 수용의 결과만은 아니다. 블레이크는 근대화가 한 사회의 변혁 의지와 신념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단순한 충격과 수용이라는 측면만이 아닌 조선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조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야욕
2. 강화도 조약(2876)
- 이후 미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과 통상수호 조약 체결
➜ 개화기. 정치·경제적으로 식민지화의 과정 밟게 됨.
- 외세에 의해 강요된 개방
① 근대화 추진을 위한 하나의 계기
②
조선은 교육입국의 의지를 가지고 각 계 각 층에서 교 육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이는 정부 주도의 교육개혁, 민족선각자들 의 교육구국운동, 종교계의 교육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2. 정부 주도의 교육개혁
1) 정부에 의한 근대학교 설립
통변학교(通辯學校) 설립: 1883년 통상아
시대상황
1. 국내 상황
1) 정치
19세기 세도정치 시기 권력은 정치세력으로 보면 노론 당파 출신 왕실 외척 및 그들과 통혼권 등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몇몇 유력 성관의 가문에, 정치기구로 보면 비변사에 집중되었다. 군주권은 인사권과 군권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여 위상이 낮아졌고, 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