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음에 기대야 한다. 최남희(2005)에서는 고대국어 시기의 「」를 인정하고 한국한자음의 형성시기를 신라말 고려초기(10c 경)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당시 형성된 한국한자음은 특수한 몇 가지 예외적인 현상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즉 당시 형성된 한국한자음은 중국한자음의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개명한 것으로 신라, 백제, 고구려의 세 나라 별로 분류되어 있다. 이 지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자음으로 표기된 토착어의 고유지명을 그 음이나 뜻에 대응하는 한자로 대치하여 개명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언어자료를 얻을 수 있다.
한자는 ‘節, 中, 以, 者, 之’ 등이었는데 이들은 대개 한자의 본의에 크게 의존한 독자이었다. ‘節’은 명사로서 ‘디위’(즈음, 임시)를, ‘中, 以, 者’는 각각 조사 ‘에, 로, 는’을, ‘之’는 어미 ‘-다’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8세기경 신라에서는 어미 ‘-며’를 표기하기 위하여 ‘旀’
Ⅰ. 향가의 개념
본래 중국의 노래에 대한 우리말노래를 지칭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표기된[향찰]된 신라의 노래를 말한다. 향가는 `사뇌가(詞腦歌)`, `사내가`, `도솔가` 등의 여러 명칭으로 쓰였다. 신라 26대 `진평왕조` 전후부터 고려 시대 광종까지 지어졌다. 향가의 완성
음과 같이 구체적인 발생경위를 밝히고 있다.
굿노래를 부르며 주술을 행하던 전통 또한 새롭게 계승될 필요가 있었으며, 화랑제도가 창안되고 산천을 찾아 노래부르고 춤을 추면서 수련을 일삼는 기풍이 고조되자 사뇌가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또한 일반 백성의 민요도 나라에서 채택해 다듬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