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백제, 가야 등도 고분 안에 벽화를 그렸으나 그 수가 매우 미미하고 현재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벽화가 드물다. 옛 고구려 지역에는 중국 집안 지역의 20여 기를 포함해 총 100여 기의 벽화 고분이 있으며, 그 내부에 있는 벽화 역시 그만큼 다양하다. 이렇게 그려진 벽화들의 양상은 시대에 따라 3
잘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이 높이 발전한 고구려의 회화는 백제․신라 등 동족의 나라들은 물론 이웃한 여러 나라들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으며 그 내용의 풍부성과 예술성이 단연 당대에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당시 동방문화를 대표하는 꽃이었다 할 수 있다.
Ⅰ. 개요
고구려는 정복국가인 동시에 문화국가이다. 고구려는 기마를 이용한 우수한 기동력과 철기를 바탕으로한 국력을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한 동방의 강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여 유기 신집으로 대표되는 역사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고분벽화 등 수많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748년, 강원 백담사
: 육계부분이 잘 나타나 있지 않음, 목이 짧음, 약간 고개를 앞으로 숙음, 옷주름이 단조로움, 머리와 육계부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음
목조석가여래좌상, 청도 대비사
: 머리와 육계부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음
조아미타삼존불좌상 및 목각탱, 16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