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발
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 부분에서 앞에서 배웠던 신문 발달에 대한 필요 조건중에 독자의 교육정도 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수 있다.
그러면 신문 이전의 시대에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신문고
신문고는 태종2년 왕이 직접 백성의
신문으로서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일제의 탄압으로 수없이 신문의 압수와 정간을 당한 신문사들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으며, 언론인들은 잦은 필화로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많은 신문들이 1940년 8월10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만 남게 되었다.
3) 미군정 시기의 신
한국신문사에서 언론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문기사가 대중들의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이 결국 선거와 직결될 것 이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에 언론 탄압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신문발행에 대한 허가제를 폐지하
한성신보>와 러·일전쟁 후의 <대한일보> (1904. 3. 10. 발행) <대동신보> (1904. 4. 18. 발행)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한국인 발행의 친일지로는 <국민신보> (1906. 1. 6. 발행) <대한신문> (1907. 7. 18. 발행)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 영국인 E.T.베셀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서 민족진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려 했으나 신문들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신문 발행 허가를 억제했기 때문에 신문의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1957년은 국내 신문이 스스로의 사회적 위상을 인식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역사적인 해이다. 3월29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