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는 말
본고는 먼저 실학이 발생된 시기인 조선말의 사회적인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내우왜란의 어려움 속에서 왜 유학이 본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마치 역사를 망쳐 놓은 것으로 비추는지를 살펴보고서야 실학의 배경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실학의 학문적 배경에서는 먼저 先秦儒學에
학문의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학자들은 자아의 자각으로 민족주의 정신을 제시하는데 노력하였으며, 교육·정치·경제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과학 사상과 실용학에 힘을 썼다. 실학파들은 성리학을 공리공론적인 관념적 학문이라 배격하고 실사실물의 학문을 주장하였다.
실학파들이 주장하는 기본 학
학문이 깊은 문인들이 수묵과 엷은 채색을 써서 내면의 세계를 표출한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유입되어 후기의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을 거쳐 말기의 김정희파에 의해 더욱 큰 세력을 누리면서 근대화단으로 계승되었다.
➅진경산수화풍
대체로 17, 18세기에 등장한 실학사상과
정약용은 유형원,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과 이용후생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로 두서의 손녀이다. 경기
실학은 대체로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상응하는 사상, 즉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반영하는 사상으로 보아 그 성격을 ‘민족적’, ‘근대 지향적’이라는 각도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외래의 학문을 수용 ․ 소화하여 우리 것으로 발전시킨 인문학으로는 통일신라와 고려의 불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