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는 소환당해 재판을 받고, 추방을 선고받았다. 투키디데스는 나중에 회고하기를, 이 추방령 덕분에 〈전쟁사〉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고, 특히 펠로폰네소스 쪽(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을 널리 여행하면서 좀더 많은 정보에 접할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았다.
투키디데스의 ‘현실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강대한 권력의 축적이 국가 생존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 보다 인간 본성에서 비롯 된 것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2) 멜로스의 대화
‘멜로스의 대화’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 즉,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현실주의를 가장 여
페리클레스의 이 유명한 연설은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려있다.
싸움터에서 죽은 젊은 아테네 청년들의 장례식에서 페리클레스가 행한 추도사.
연설구절
우리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Demokratia)라고 부르는데, 이는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손에서 나오
들어 직접 지휘한 전투의 중요성을 과장하지 않았고,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지도 않았다. 또한 자신의 추방을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언급하지 않고, '2번째 서문'(BC 421년 강화조약이 맺어진 뒤에 씀)에서 사람들을 좀 더 폭넓게 접촉할 수 있었던 기회로 언급한 것은 투키디데스다운 일이다.
속에서 탐관오리를 이렇게 매도하고 있다. 또 법률의 조항 가운데는 "포악한 정치를 음모하는 자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든지 모두 무죄이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아테네에서는 성인 남자들이 추천으로 뽑히면 누구든지 관직에 오를 수 있어 남자들은 대부분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