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로 임명했다. 이에 안록산은 이림보의 지원 속에 평로(동북지방), 하동(태원지방), 범양(북경지방) 의 세 지방의 절도사를 겸하게 되는 파격적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권신 이림보가 죽고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충이 재상에 오르자 안록산의 출세 가도에는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안록산은
도사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해남으로 내려와 지냈다. 42세 되던 인조6년(1628)에 별시문과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송시열과 함께 봉림대군, 인평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고, 사부는 관직을 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총애에 힘입어 공조좌랑, 형조좌랑, 한성부 서윤 등을 5년간 역임했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 공정 프로젝트는 중국 국경 안에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고구려사를 비롯하여 고조선사, 발해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한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해 중국의 변방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음모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내 한국 전(前)근대
2장. 당대번진의 유래와 그 할거
1. 번진 [藩鎭]
당(唐) ·오대(五代) ·송(宋)나라 초기에 절도사(節度使)를 최고권력자로 한 지방지배체제. 710년 하서(河西)번진이 처음으로 설치되었으며, 안사의 난 직전까지 변경에 10개가 설치되었다. 난이 평정된 뒤에는 내부지방에도 잇따라 설치하여, 약 45개가 출
1. 우정
肝膽相照(간담상조)
[출전] 韓愈(한유)의 柳子厚墓誌銘(유자후묘비명)
[내용]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 字는 '退之') 와 유종원(柳宗元 : 字는 '子厚')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운동을 제창한 문우(文友)로서 세인으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