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계기로 번진이 일제히 자립하여, 마침내 당은 멸망하였다. 오대 때에는 번진에 의거한 무인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무인정치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송나라 태조·태종은 적극적으로 그들의 해체책을 시행하여, 마침내 번진체제는 붕괴되었다
2. 번진의 유래당대번진은 하루아침에 홀연히 출현
권력다툼 끝에 반란을 일으켜 한달 만에 낙양을 반년만에 장안을 점령하고 국호를 대연 연호를 성무라 했으나 지방적 차원의 저항과 위그르의 당군 원조, 반란군 내부 분열로 반란은 종식되었다. 안사의 난이 가져온 영향력을 매우 컸는데 그 중 번진은 京兆部와 河南部를 제외한 전역에 설치되
하북 3진에 웅거하였으며 ‘河北의 舊事’ 라고 하여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고 反唐적인 태도를 공공연하게 나타내었던 것이다. 이후 각지의 藩鎭은 차례로 唐朝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반역 번진화 되었으며 이에 대해 당 憲宗의 개혁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唐 王朝의 대응책이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된다면 조용조와 부병제는 그 근간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조용조와 부병제가 균전제에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용조와 부병제가 비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된다면 농민층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게 되고, 농민층의 불안정은 자연스럽게 균전제를 불안하게 만들
난을 통해서 당 전기의 모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으로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본 리포터에서는 안․사의 난이 일어난당시의 상황, 즉 경제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 또 군사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또 안록산의 등장과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 직접적인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