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이 죽자 조선 제10대 왕으로 등극했다. 그 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는 19세에 등극했지만 섭정을 받지는 않았다. 그가 왕으로 오를 때가 12월이었던 만큼 며칠만 지나면 성년이 되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1494년 12월 왕위를 이어받은 연산군은 적어도 무오사화를 겪기 전까지는 폭군의 모습이 아니었
일파의
대윤
경원대군(명
종)의 외숙인
윤원형 일파
의 소윤파
세자(인종)의
외숙인 윤임
일파의 대윤
사이의 왕위
계승을 둘러
싼 대립
윤임 일파의
몰락과 연루
된 사림이
죽거나 유배
외척간의 대
립이 정쟁으
로 표면화
<출처 : 김경수(2008), 조선왕조사전 p179>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은 그동안 억눌렸던 자신의 욕망을 마구 표출하기 시작했다.?기생들을 궁중에 들이고, 아낙들을 겁탈하거나 자신의 친족과 상간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친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고서는 그 동안의 잠재되어 있던 극악한 그의 성격이 어머니에 대한 복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유례가 없을 만큼 궁궐 등 왕실과 관련된 건축물을 새로 짓고 화려하게 꾸몄다.
1608년 즉위했던 직후, 광해군은 왜란 당시 불타버린 종묘의 중건을 마쳤고 부왕 선조가 시작한 창덕궁 중건사업을 재개하여 1611년 완성하고 창덕궁으로 옮겨갔다. 창덕궁 중건사업을 마친 뒤에는
연산군 앞에 불려가고, 광대들은 김처선에 의해 권력의 도구로서 이용된다.
- 장녹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으며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녀는 자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