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동맹에 대하여
청일전쟁에서의 청의 패배는 세계 자본주의 열강으로 하여금 중국 본토의 분할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중국 분할에 일본이 어떻게 참가하려 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장의 목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열강들의 중국 분할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다음과 같다. 열
1. 들어가며 1.
“일본의 장래, 동양의 장래,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세계의 장래는 장차 일본에서 군벌이 득세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적인 팽창주의자들이 득세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전자가 득세하게 되면, 한국을 조잡하게 통치하게 될 것이고 끝내는 커다란 분쟁을
동맹의 구축을 통해 씻으려는 일본 간의 현실적 이해관계로 맺은 ‘영일동맹(英日同盟)’으로 인하여,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러시아의 발트함대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 하지 못한 채,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지친 발트함대를 요격하여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
영일동맹’으로까지 격상된 바 있는 미일동맹은 미국의 일본 중시 외교정책과 맞물리며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는 반미감정의 대두와 함께 균열을 겪고, 주한미군의 재편 문제 등을 통해 재조정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특히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 이후 미군정을 경험했
영일동맹(1902), 3. 러일전쟁(1904), 4. 신해혁명(1911), 5. 5・4운동(1919), 6. 2차 세계대전당시의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으며 마지막으로 7.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Ⅱ. 1. 의화단사건(1900)
무술변볍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해인 1899년에는 의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