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진왜란, 그 혼란기의 광해군과 인목대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당시 조선의 왕은 14대 임금인 선조였다. 선조의 즉위는 16세기 초반 이래 지속되어온 훈구와 외척들의 척신 정치가 끝나고, 척신정치 시절 박해를 받았던 사림파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하면서 바야흐로 정치판이 물갈이를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하려 한다는 무고로 김제남 부자와 영창대군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인목대비는 서궁인 덕수궁으로 쫓겨나 폐비가 되며, 그 뒤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1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다는 내용이다. 《계축일기》의 작자로는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대비의 측근 나인이 쓴
영창대군이 탄생하자, 서자이며 둘째아들이라는 이유로 영창대군을 후사(後嗣)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소북과 그를 지지하는 대북 사이에 붕쟁이 확대되었다. 1608년 선조가 병이 위독하자 그에게 선위하는 교서를 내렸으나 소북파의 유영경이 이를 감추었다가 대북파의 정인홍 등에 의해 음모가 밝혀져
다. 궁궐 공사(1608년~)
상께서 슬프고 괴로워하고 계시는 가운데 상당히 편치 못하신 징후가 있는데, 현재 거처하시는 방이 비좁고 옹색하여 조섭(調攝)하시는 데에 적합하지 않으니, 속히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셔야 합니다. 궁장(宮墻)을 수리하는 일에 대하여 일찍이 전교하셨는데도 해조(該曹)가
영창대군을 잘 보살피라"는 교지를 내린다. 그러나 당시 권신이었던 유영경(柳永慶) 1550(명종 5)∼1608(광해군 즉위년). 조선 중기의 상신(相臣). 1608년 선조가 죽기 전에 영창대군을 부탁한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 이이첨(李爾瞻)·정인홍의 탄핵을 받고 경흥에 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