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영화는 비토리오 갈치나(Vittorio Calcina)감독이 뤼미에르 제작사와 함께 제작한 <공원에서 산책하는 로베르토와 마르게리타>이다. 1896년 11월26일에 촬영된 이 영화는 이탈리아 왕과 여왕이 몬자 공원에서의 산책을 찍은 단편으로 아직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작품이었
영화 제작 인들은 시골로 거리로 나갔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외국 영화를 더빙 하기위한 후시 녹음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에 스텝들은 현지에서 촬영 한 이후에 나중에 대사를 더빙 하면 되었다. 그들은 현실의 거친 모습들을 담으려고 했고 관객들의 현실을 통해 관객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 했다. 이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업주의의 지배가 양심적인 영화제작을 가로막아 순수영화의 성장과 참신한 신인감독의 배출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탈리아영화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게 된 데는 감독들의 노력뿐만 아니
영화 운동으로 볼 때 네오리얼리즘은 10년을 지속했다. 그러나 네오리얼리즘 최후의 작품을 데 시카의 <지붕(1956)>으로 꼽는다면 14년으로 늘어난다. 이 장에서는 네오리얼리즘 사조의 대표작들 중 베르토 롯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보고, 그 영화의 영화사적 의미와 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구체적
영화의 시조이다. 형 오귀스트(Auguste:1862∼1954)와 동생 루이(Louis:1864∼1948) 형제는 사진가의 아들로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연구, 필름이 원활히 움직이는 장치를 완성하여 촬영기와 영사기를 만들었다. 두 형제는 최초의 영화 카메라를 가지고 영화를 찍었는데 그 작품은 1895년 <열차 도착 Train at Gr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