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맹이라는 독립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전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미친 한 페이지>를 제작하지만 상업적인 실패로 다시 쇼치쿠 산하로 들어감으로써 일단락을 짓는다. 이후 메이저 시스템이 주를 이루던 일본의 영화계에 새로운 독립 프로덕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라고 할 수 있
일본영화가 아니고, 또 재일 한국인이 주연한 영화까지도 일본영화라는 범주에서 배제해 버린다면, 전후의 일본영화사는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일본인이지만 다 카미네 쓰요시와 같이 오키나와 말로 제작하고 일본어 자막을 넣은 영화는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1970년대 이후의 구로사와
일본영화의 역사
50년대 (일본영화의 황금기)
메이저 대형 영화사의 스튜디오 시스템 개발
60년대 (일본영화의 누벨바그)
텔레비전의 보급, 젊은 감독의 기용, 독립영화 시대
70년대 (서구 지향적인 문화)
젊은 취향에 맞추는 영화 제작, 로망포르노 제작
80년대 (일본영화의 침체)
영화 미학으로 발전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다라 다루는 주제는 달라지지만, 일관된 이미지 중심의 형식을 강조하는 독특한 일본영화가 유지되는 힘이 되었다.
격변의 60~70년대 독립영화의 탄생
한 해 600편 이상을 제작하던 메이저영화사의 활동이 1960년대로
가부키와 노 등 전통적인 재현 양식을 통한 일본만의 독특한 영화 양식을 개발.
초기에는 온나가타(女方)라고 해서 가부키처럼 남성이 여성 역할까지 다 하다가 1920년대 초에 비로소 여자배우 등장.
1912년 '닛카츠(日活=일본활동사진)'를 건립하여 대형 메이저영화사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