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 예안향교 -> 유교문화박물과
2) 코스 설정이유
-유교의 교육을 담당했던 향교와 서원을 알아보면서 두 기관의 차이를 알아보고 선비들의 공부 방법과 그들이 중요시 했던 것들을 알아본다.
유교 박물관을 통하여 유교의 소개, 수양방법, 가족, 사회, 정치, 미래를 제시해 본다.
이황과 이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그 명성은 후대까지 이어 내려오고 잇어 아직도 많은 후학들이 그들의 사상을 배우고 따르고 있다. 이황은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지금의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식(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본관 진보(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설화산 자락 남서쪽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들어섰고, 마을 앞으로 외암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마을의 역사는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봉을 지낸 진한평의 맏딸과 혼인한 안동의 예안 이씨 이사종이 들어와 살면서부터다. 마을 이름은 외암 이간의 호에서 유
예안(禮安) 보문의숙(寶文義塾)에서 비로소 신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9 (16세)에 그의 집이 녹전면 신평동으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사건에 접하게 되었다.그것은 기미 독립만세 운동이 예안에서 일어났다. 그후 1921년 18세 영천(永川) 안용낙(安庸洛)의 딸 순흥 안씨(順興 安
예안현 온계리(지금의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퇴계로 이황이 제금나 살던 토계리를 따서 지은 것이다. 원래는 토계이던 것을 이황이 퇴계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퇴계의 할아버지는 태어나는 아이한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고 당시에는 일반화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