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는 백제나 신라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남부 지역에서는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화덕이나 화로를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모든 살림공간을 한 건물에 모아서 만든 집으로 혹독한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열효율을 높이고, 산짐승이나 도적 떼 같은 바깥 적으로부
관련한 사람들의 생활상이 사회경제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번 리포트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한옥마을의 규모가 큰 것도 아니었고, 조선후기의 다섯 가구의 가옥이 복원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상을 규명해 보겠다는 생각이 다소 거
온돌과 마루가 공존한다는 것이며 처마를 깊숙이 뺀다는 것이다. 한옥의 평면에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게 된 것은 추운 지방의 평면과 따뜻한 지방의 평면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한옥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사계절의 냉난방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현대건축법에는 처마가 1미터 이상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