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리(大庇里)의 지명은 대비동(大庇洞)마을의 지명을 따서 이름하였다. 대비리는 단일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대비마을의 뜻은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서 왕비가 태어났다고 하여 대비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을 세분하면 안곳, 웃골, 새태로 구분된다.
이전에는 마을명을 대비동(大妃洞), 대부동
용동중학교가 되었다. 위와 같이 양지향교는 수 백 년 간 한문교육을 담당하다 20세기 들어 현대식 교육기관인 양지초등학교, 용동중학교의 산실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양지향교 유림들이 성탄일에 기독교에서 예배를 보듯이 공자탄신일이면 이곳에서 향사를 올리고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유림회관을
마을로 메꾸는 일을 진행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교회, 학교, 산업을 공동전선으로 파악하고 서로 유기적인 교호작용에 목적을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산업교육사상에 근거한 구체적인 종합계획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5) 평생 교육 사상
남강은 어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