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은 대부분 극좌의 공산주의세력에 합류하였으며 극좌파들은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더욱 결속하여 북한정권의 적극적 영향과 소련의 지원하에서 공산혁명의 폭력적 전7술을 노골화 시켰다. 한편 이에 대비하여 남한의 보수우익진영은 이승만, 한민당 등 극우파세력이 주장하는 단정론을 지지하게
재편이었다. 미국은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던 시기에 조선을 식량기지로 했던 것처럼 일본의 재건을 위해 한국을 식량 보급처로 이용한 셈이다.
한편, 초대 정부의 경제 운영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농지개혁’이다. 북한의 무상매수·무상분배에 맞서서 자본주의 국가에 걸맞게 유
Ⅰ. 서론
근대에 보수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최초로 정식화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E.버크이고 그 후 보수주의자들은 직접 간접으로 버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버크의 유명한 저술 ‘프랑스혁명의 고찰’을 비롯하여 새로운 휘그주의자의 옛 휘그주의자에 대한 어필 등 일련의 저술은
세력들과도 의견을 교류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새롭게 재편된 질서 속에서 탄생한 것이 냉전체제이며, 국제사회에서 서구 열강이 아닌 타 목소리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냉전체제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편가
2) 테르미도르 반동 - 로베스피에르 파의 몰락과 혁명의 보수화
7월 22일과 23일에 있었던 공안위원회와 치안위원회 합동 회의에서 로베스피에르 파와 반대파의 화해가 이루어져 두 파 사이의 대립과 반목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두 파가 완전한 화해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로베스피에르는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