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93년 9월 우리별 2호, 1999년 5월 우리별 3호가 잇달아 발사됐다.
영국에서 우리나라와 외국 기술진이 공동으로 개발한 우리별 1호는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제작 기술을 얻고 관련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우주과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 우주산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개발 분야 연구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둠
과학실험위성
우리별 1호 :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KAIST가 영국의 Surrey 대학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 1992년 남미 꾸르우주센터에서 발사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보유국가로 등록됨
우주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증대 및 우주산업의 활성화
우리별 2호(199
우주개발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서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된 형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주개발의 장기 비전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장기 비전의 정립을 위해서는 기술예측과 미래예측을 활용하거나, 과학기술정보의 수집분석이 필요하다. 즉 어느 일
우주연구소 설립, 국내최초 인공위성 우리별1호 우주발사 등을 계기로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우주개발 활동은 정부 연구기관에 의해서 주로 추진되고 있으며, 우주산업 관련 참여 기업체는 매우 적은 실정이다. 관련 정부 연구기관으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 과학
산업부와 과학기술처, 수요관련은 환경처·기상청·공보처·건설교통부, 그리고 개발 및 수요부문이 동시에 관련있는 국방부 등이 있으나 동부처들이 각 사업들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관계로 국가자원의 비효율적 이용이 초래되고 있다.
국내 우주개발을 위한 범국가적 심의·의결기구로는 항공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