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들이 지어 남은 작품들. 기녀의 기원을 신라에 두느냐, 고려에 두느냐에 따라 시작점의 시대 소급이 달라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된 분야라는 것이다. 기녀문학의 범주는 기녀 뿐만 아니라 서녀 부계가 양반층이라도 일반 사대부층 여성들처럼 정실로서 산 것이 아니었고 작품 경
기녀의 수가 정해졌는데 적은 곳은 20명에 불과했지만 평양과 같이 색향(色鄕)으로 유명한 곳은 200명이나 되었다. 이러한 기녀제도는 유교를 국가사상으로 하는 조선 사회의 질서에 사실상 반대되는 것으로서 이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조선 초부터 활발했다. 그러나 기녀제도가 관리들 자신의 처신에 직
초의 여류작가(백수광부의 처)의 작품
태평송
- 신라 한시의 시작
고려시대
- 여성화자의 작품 있지만,
여성작가가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음.
16세기
- 본격적으로 작가의식을 가지고 참여한 시기.
- 그 중에서 기녀시조와 규방가사를 비교하며 발표
(중략)
기녀시조의 예 - 매창
기녀(妓女)란 명칭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첫째는 연회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어 여흥을 돋우는 가기(歌妓) 혹은 무기(舞妓)의 개념으로 쓰인다. 가무기(歌舞妓)는 여기(女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해어화(解語花)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음악(音樂), 무용(
기녀들이 지었던 기녀시조로 나누어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또한 각각의 향유층에 대해서는 그 성격에 맞는 접근 방법으로 다루어 향유층의 독특한 특성과 의의를 강조해보았다.
Ⅱ. 들어와서
1. 士大夫時調
사대부 지식인들은 시조문학을 꽃피우며 주도해 나간 중심 향유층이다.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