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었지만, 관직에는 그다지 혜택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 학문의 초보를 가르친 것일지도 모른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와카(和歌)와 문장, 당시 남성의 필수 학문인 한문학의 소양이 깊어,「사기(史記)」나 「백씨문집(白氏文集)」등의 한문 서적을 자유롭게 읽었던
문학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겐지모노가타리<원씨물어>』는 「작리물어」의 허구성, 「가물어」의 서정성, 여류 일기 문학의 내면 응시의 시각을 계승하여 총합 완성시킨 일본고전문학의 최고 걸작이다.
작중 세계는, 『겐지모노가타리』의 성립 당시부터 수 십 년 거슬러 올라간 연희
원씨물어
가물어와 작리물어 2개의 흐름에 일기문학의 사실성을 축으로 하여 나온 자식부의 『원씨물어』라고 하는 일본고전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등장한다. 하지만, 『죽취물어』와 같은 작리물어나 『이세물어』와 같은 가물어 등과는 확연히 다른 뛰어난 작품성을 보이게 된다.
자식부라는 이름은 궁궐에서 일했을 당시의 여방였을 때의 이름으로, 본명은 등원향자로 알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또한 문헌상으로 입증되어진 바는 없다. 자식부라는 이름은 아버지 위시의 관직이었던 식부승의 식부와 『원씨물어』의 작중인물인 紫の上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 현재 가장
일본 고유의 헤이안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일본 최초의 칙찬집(천황의 명령으로 편찬되는 가집)인 『古今集』이 만들어진 것은 『萬葉集』이 성립된 지 100년이 지난 905년의 일이었다. 『萬葉集』이후 사적인 연애의 장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와카가 한시를 대신하여 공적인 궁정시로서의 위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