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 Coligny) 제독의 지휘하에 무력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한동안 꼴리니는 샤를르 9세의 신임을 받으며 두 교파간의 화해를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그는 모후 메디치의 사주에 의해 암살되고, 이틀 후 파리에서는 샤를르 9세의 여동생인 마르거리트 드 발로와와 신교도인 앙리 드 나바르(Henri de Navarre, 앙트
종교라는 양상은 왕국의 통일성 (cujus regio, ejus religio 하나의 국왕, 하나의 국가)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가톨릭 당파는 몽모랑시(Montmorency)원수와 프랑스와 드 기즈(Francois deGuise)의 지휘하에, 신교도위그노(Huguenots)파는 앙트완 드 부르봉(AntoinedeBourbon), 루이 드 콩데(Louis de Conde) 그리고 꼴리니(Ga
앙리 4세(1553-1610)의 부인으로, 회고록을 비롯해 많은 시(詩)를 남겨 프랑스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다. 마고 왕비는 앙리 2세와 카테린 데메디치의 딸로 태어나 신교 세력과의 평화 공존을 위해 나바르 왕이었던 앙리 드 부르봉과 결혼했다. 그는 사
1. 서론
영화 <여왕 마고>를 중세 유럽의 종교와 권력의 혼란기에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를 다른 영화이다. 16세기 프랑스는 신교와 구교간 종교 갈등으로 상호간의 살육이 전 대륙을 뒤덮고 있었다. <여왕 마고>는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왕실의 암투를 그려낸 작품이다. 마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까트린느의 검은 속마음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첫 시도로 까트린느는 꼴리니 제독을 죽이려 하나 실패하고 개신교도들의 분노와 증오만 사게 된다.
결국 까트린느는 폭도를 두려워하여 마고와 앙리의 결혼식에 온 수많은 위그노들을 즉각적으로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