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에서 다수를 차지한 세르비아인들이 타 민족공화국의 분권화와 민주화를 견제함으로써 갈등이 내재되었다. 1987년 이후 과격한 민족주의자인 밀로세비치의 등장과 1989년 동유럽전역에 밀어닥친 민주화의 물결에 의해 연방에 내재해있던 민족 간의 갈등으로 폭발했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으로, 1963년에는〔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탈바꿈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유고는 티토의 화합적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안정된 국가를 유지했다. 티토는 스탈린주의와 거리를 두는 독자적인
서론
지금부터 살펴볼 실패한 연방의 사례들은 연방제의 제도적 취약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연방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정치적 합의와 역사적 배경의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다. 제도는 정치적 합의의 소산물이며 사회와의 유기체적 결합물이다. 기본 철학과 원칙이 공통적으로 전제되지만 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의 하나였으며, 1992년 3월 분리 독립한 신생 공화국이다.
터키어로 ‘숲으로 덮인 가파른 산맥’이란 뜻을 지닌 발칸은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다. 험준한 산악지대에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 남 슬라브인을 비롯해 루마니아,
20세기는 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제 관계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차 대전 후 제국이 해체되면서 동유럽 지역에서는 새로운 국가들이 생겨났고 그것이 최근 이 지역에서의 유혈사태까지 이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