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박규수(朴珪壽)를 만나 그의 권고로 근대적 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1881년 봄. 조선은 일본의 문명개화를 파악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다. 유길준도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 때, 동경에 게이오의숙에 입학함으로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다.
국민의 교육’ `국민의 권리’ 등 개화파로서의 의견을 밝힌 계도적인 글들로 구성돼 있다. 제5편에서 제18편까지는 서양의 문물, 제도, 교육, 정치 형태, 정부의 직분, 세금, 군대, 화폐, 법률, 경찰제도, 건강법, 서양 학문, 종교, 관혼상제, 놀이, 시설, 문명기기 등이 총 망라돼 있다. 또한 제19편과 제20
서양의 과학기술관과 세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을 것이다.
즉 이것은 개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에 조선의 개화적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소산물로써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H.B Hulbert의『사민필지』는 사람들로 하여
서양문물의 소개로 일관돼 있다. 제19편과 20편은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소개다.
문학적 의의보다는 개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담은 서양 견문기라 할 수 있다.
나) 앞선 서양의 제도와 문물 소개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우리나라 초유의 서양 견문록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
유길준에 대한 연구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들은 저서 자체 혹은 인물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한정되어있다. 따라서 이번글은 윤치호와 유길준의 대표저서인 『윤치호일기』와 『서유견문』을 통해 그들이 가진 인식뿐만 아니라 개화파 전체가 가진 서양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