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박규수(朴珪壽)를 만나 그의 권고로 근대적 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1881년 봄. 조선은 일본의 문명개화를 파악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다. 유길준도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 때, 동경에 게이오의숙에 입학함으로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다.
서유견문’은 기행문에 속하나 집필 형식은 여행기, 견문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개화 소개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편과 제2편은 세계의 산, 바다, 강, 호수, 인종, 물산 등 인문 지리적인 개론이고, 제3편과 제4편은 `방국(邦國)의 권리’ `국민의 교육’ `국민의 권리’
서유견문의 서문에서 유길준은 “나는 비록 우리글을 순전히 쓸 수 없음을 한탄한다.”고 전제하고 “상하부천과 부녀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쉽게 알아보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억수 “개화기의 국어교육 실태와 국어교과서 분석고찰” 1980년
2. 개화기와 그 후
1908년 조선어
개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에 조선의 개화적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소산물로써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H.B Hulbert의『사민필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개화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이해시키도록 노력했다. 또한 이러한 개화의 움직임을 소화하려
*『서유견문』참고 정보
가) 개화에 대한 열망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유길준은 전권대신들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접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와 자신이 견문했던 체험들을 기록으로 전하고자 했다.
『서유견문』은 기행문에 속하나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