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은 1971년 3월 11일 76세로 운명하였다. 정부는 197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1995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3. 유일한의 기본정신
유일한 박사의 정신
유일한 박사는 금세기를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신상(紳商)으로 존경받았고,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애국적 민족
1. 유일한의 생애
1) 출생과 유년시절
유일한이 출생할 당시는 한반도에서는 독점적 지배권을 차지하려는 중국과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렇게 국가정세가 어지러운 1895년 1월 15일,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김기복의 사이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
유일한은 1926년 세브란스의 에비스 학장으로부터 연희전문학교의 상과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초청으로 귀국하게 된다. 귀국하기 전 서재필 박사를 찾아갔다가 “한국인임을 잊지 마시오.”라는 말과 기념의 정표로서 목각화 (버드나무) 한 장을 받았다. 이 무성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는 오늘날까지
<1>유일한의 생애와 경영이념
1. 생애와 업적
1) 유일한의 출생과 미국서의 활동
유일한은 1895년 평남 평양에서 유기연 광고 김기복 여사 사이에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당시는 한말의 혼란기로 일제의 식민지시대, 해방직후의 혼란기, 6ㆍ25, 4ㆍ19 및 5ㆍ16 등의 격동기를 겪었다.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종전 4단계 행정구역 체제에서 면을 폐지하고 3단계 행정구역 체제로 개편하였다. 또한 광산, 임업사업소, 수산사업소, 공장, 기업소 중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임금노동자가 400명이상 거주하는 곳에 노동기구를 설치하였다. 이 장에서는 북한의 행정체제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하자.